명품족을 생각한다
이름     김춘근 날짜     2016-06-02 13:08:40 조회     986


명품족을 생각한다 


명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명품 자체의 생산과정과 그 명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인의 기술

등을 보더라도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장인의 예술혼이 가미된 명품이 갖는 가치는 인간의 여러 가지 욕구를

충족하여 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수에 맞는 소비풍조와 삶의 질에 내재된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인식의 결여,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 등과

견주어서 “명품족”이라는 좋지 않은 별칭이 붙게 된 것이고, 이것은

명품이란 상품의 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 논의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된 가치와 삶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명품이라는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명품족은 르네상스 시대 때도 있었다.
아니 인간의 문명사적인 입장이나 인간의 본능적이고 심리적인 의미로

볼 때는 태고적부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에르메스의 버킨 핸드백을 들고,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로렉스 시계를 차고, 수 백만 원짜리 샤넬 가방을 들고, 알랭 미끌리

안경을 쓰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몸에 두르고 있는 명품을 통해

심리적 우월감을 맛보려는 명품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인간은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착각 속에서 지각없

는 생을 살다가 죽어간다.
자신이 명품을 휘두르고 있으면 타인이 자신을 명품으로 생각할 것이

라는 착각 아니면 기대심리, 그것이 마치 성공한 사람이고 소위 상류

사회에 일원인양 생각해 줄 것이라는 착각과 기대감과 자기만족 등....

이것 때문에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끝없이 네잎 클러버의 행운을

찾다가 북망산으로 간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게 어때서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이고 뭐가 문제인데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다 그렇게 할려고

피 땀 흘려 일하는 거지 등등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할 말도 없고 대꾸할 필요성과 마땅한 논리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알고 가자는 것이다.


다른 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정, 다른 불특정 다수에게

진실을 호도하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가정 말이다. 그래서 좀 더 올바른

명품의 소비풍조와 의미에 관한 가치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명품에 열광할까 ?
산업혁명과 르네상스 이후 명시적인 신분제도가 소멸된 상태에서

명품은 신분과 능력을 드러내는 새로운 징표였다.


명품의 유혹은 명품 그 자체의 사용가치보다는 그것이 갖고 있는

후광효과에서 비롯된다.
명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질적인 다름과 차이를 끝없이 추구하고

만족하면서 그것이 행복이요 성공이라고 한다. 즉 그 다름과 차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만족감에 탐닉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일뿐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간혹 관심과 존경을 보내는 듯이 보여도

그 본질은 시기와 질투 등 평가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사실 뒤로

돌아서서 비아냥거리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단 사람이 명품이면 강력한 견제구 역할 정도는 될 것이다.   


리사 자딘은 “상품의 역사”에서 서쪽의 기독교 세계에서 동쪽의 오스만

제국에 이르러 까지 넒은 지역을 아우르며 교역의 양상과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다문화주의와 소비주의를 조명하고 있다.


명문가의 귀족들과 새로 부를 쌓은 상인들은 가문의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화가들에게 호화로운 그림을 주문했다.


이국적인 상품의 구매에도 열을 올렸다.


르네상스의 사람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장신구들만 아니라 그림,

태피스트리, 인쇄본, 능라와 다마스크 비단, 청동상 등등


이것들은 인간의 능력과 위엄을 보여주는 물질적 현존이며 수호신

이었던 것이다.


국제무역의 상권을 누가 장악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국제무역은 활성화 되고 동서를 잇는 교역로는 확대된다.


그 교역로를 통해 오고간 무수한 상품들은 풍요로운 물질생활의 향락에

푹 빠져버린 르네상스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꾸만 크지는 그 욕망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 물질적 욕망은 인간적 위엄에 대한 욕망과 겹쳐진 것이다.


위엄을 갖춘다는 것은 욕심나는 물건의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과 동일시 되었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즐기는 동안 물질에 대한 감성과 기호는 나날이

고급하고 세련되어 갔다. 한편으로 수입을 초과하는 명품의 구매로 인해

사치스런 소유물이 쌓이는 만큼 빛도 늘어났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풍부한 물질생활을 누리려는 이 미친 소비 열풍

에 부자와 귀족들만 아니라 심지어 교황이나 추기경들까지도 뛰어들었다.

그들은 거의 예외없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추기경의 소유품 목록은 아름다운 보석에서 필사본까

지 휘황찬란하였다. 그가 죽고 나자 엄청난 빚이 드러났다.


그의 호화스러운 소유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채권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교황 바오로 2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죽은 뒤 남은 엄청난 빚을 상환하기 위해 값진 보석과 예술품들은

모두 팔아야했다. 보석과 예술품들과 같은 물질들이 뿜어내는 휘황한 빛은

사실 한 순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화가 쿠엔틴 메치스의 “빚 회수자들”이란 그림까지 나왔을

정도이고 그 시대의 자화상이 되었던 것이다.


“카를로 크리벨리”의 “수태고지와 성 에미디우스” 라는 그림에서 시작된

서술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에 대한 애기로 끝을 맺는다. 


리사 자딘의 문체는 사실의 고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건조하고 둔중한

것을 인정한다.  


리사 자딘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소비 행태에서 다름 아닌 오늘날의

명품에 열광하는 명품족의 뒷 모습에 감추어진 우울한 그림자를 끄집어

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넎은 지평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즉,

비열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편협함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고 또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도 거부하는 오늘날의 이 세계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잇는 세계인 것이다“라고  


이런 예시적 지적에 대하여 오늘날을 살아가는 참지식인이라면 명품에

대한 올바른 가치판단과 바람직한 소비에 대한 한층 고양된 철학적 사고

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세속의 욕망에 물들어 시류에 영합하는 부평초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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