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를 생각하다
이름     김춘근 날짜     2016-07-06 15:58:47 조회     5807

“사람들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무슨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봐요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보는 것이죠.


그들은 나를 음란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은 결백한척 하지만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이 없어요,


그 대신 “나”라는 사람을 마음대로 지어냅니다.


나는 그들과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어요.


모든 것은 무의미하니까......“

 


마릴린 먼로(1926. 6. 1-1962. 8. 5)는 미완성의 자서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이렇게 불만스럽게 표출했다.

 


그 외에도 마릴린 먼로가 세상과 맞서려고 했던 술회는 많다


 

“나는 완벽한 치아를 가진 남자에게는 끌리지 않는다.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많다. 그 격식화되고

배타적이고 고고한 척 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을 나는 왠지 경멸하고 싶다”

고 했다.

 


이것을 후세 사가들과 평론가들은 먼로가 불행에 길들여진 본성 때문에 기질적

으로 행복과 품위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발에 나른하게 미소 띤 얼굴,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걸음걸이, 섹스심벌에 어프로우치하는 풍만한 몸매, 백치미, 치켜 뜬 고깔 눈, 붉은 입술, 퇴폐적인 듯 천진난만한 웃음 등등

 


마릴린 먼로를 상징하는 말은 많다.   


그러나 이것만이 먼로를 규정 짖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녀에게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다.
 
위 모든 것들은 어쩌면 먼로가 이 세상과 싸우기 위하여 자아의 완성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생존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먼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적인 갈망이 뚜렷한 여자였지만, 음험한 당시의 세상과 싸우기에는 너무 순수하고 나약하고 고독한 존재였기에 절망했던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 !


그는 세기의 스타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했을 드러난 사실들에 한 두 가지 필자의 개인적 관점을 첨가하여 재음미해 보는 것이 그녀에게 그리 가혹한 처사는 아니라는 판단에서이다.


가려진 스타의 “이면의 삶”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탐사를 통하여 그가 겪었을 인간적 고뇌와 죽음보다 더한 외로움과 절망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우리 범부들의 인생살이의 거울로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제공 정도라면 이 또한 유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어야 하는데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말이다. 
 


마릴린 먼로의 본명은 노마진 모턴슨이다.


1926년에 태어나서 1962년 3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오드리 햅번, 잉글리드 버그만,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과 함께 세계 영화사 10대 여우이다.


어린 시절은 고아나 다름없이 지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태어나서 얼굴도 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외가 혈통의 유전병인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일찍부터 친척집과 고아원 그리고 위탁 가정을 떠돌며 어린 파출부와 같은
 
생활을 했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등등


식구들이 차례차례 목욕을 하고 난 더러운 물에서 목욕을 했다. 아홉 살 때 위탁가정에 하숙하고 있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도움을 받고자 주위에 요청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아 포기했다.


마릴린 먼로의 어린 시절은 이처럼 가난과 외로움과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딘가 가고 있는 것처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정처없이 걷는 것뿐이었다.   


먹는 것, 스타킹, 집세를 걱정하고 중고자동차 할부금 갚는 일에 늘 난감해 했지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지적인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먼로는 누군가 단 한 사람의 연인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불행하게도 실패하고 만인의 연인이 되었다. 조금 이름이 알려지자 여자들은 한결같이 먼로를 질투하고 의심하고 백안시했다. 거꾸로 남자들은 호의를 베풀고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그 동기가 불순한 것이었지 인간적인 것은 없었다.


먼로는 언제나 질투의 대상, 의심의 대상, 배척의 대상, 성적인 대상으로 영원한 정신적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듯 먼로는 우울했고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외로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훗날 마릴린 먼로는 다음과 같은 마음의 일단을 애기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누군가 등 뒤에서 진정어린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했다,내 삶은 진정 달콤한 키스나 약속은 없었다, 사랑 받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낙태수술을 스무 번 쯤 했고 나를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들끓었지만 늘 외로웠다”라고......  

 


스무 살 무렵 헐리우드에 와서 사진 모델과 단역배우 생활을 하며 최소한도의 생활비를 벌고 연기학원을 다녔다. 당시 먼로는 먹고 살기 위하여 하찮은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며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어”에서 “리 스트라스버그”로부터 연기를 배웠다.

그렇게 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갔다. 그 후 성공한 마릴린 먼로는


“뜨거운 것이 좋아”, “왕자와 무희”, “버스 정류장”, “7년만의 외출”, “돌아오지 않는 강”,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

한다”, “나이아가라”,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등 불후의 명작들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면서 드디어 그녀는 헐리우드 영화계를 평정했고 동시에 섹스 심벌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섹스 심벌”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가 그를 둘러싼 타자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먼로 자신은 자신에게 덧 씌어진 그 “섹스심벌”이란 이미지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면과 고뇌를 알아 줄 이 없는 세상을 원망하며 끝없는 고독과 방황의 길을 걸어왔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헐리우드의 가부장제 시스템과 용감히 맞서기도 하고”, “자기도취와 자기혐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조 디마지오”나 “아서 밀러”와 같은 당대 최고의 남자들과 결혼했지만, 그 결혼에는 늘 파국과 불행의 그림자들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욕망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스타라는 이름으로 남성 판타지 속에 투사된 제 모습을 정확하게 인지할 정도로 똑똑했음에도 왜 마릴린 먼로는 방황하고 마음 한켠에 늘 이방인의 쓸쓸함을 지니고 있었을까 ?

 


그것을 후세의 사가들은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절정의 배우로서의 삶과 천대받는 비천한 삶으로 일관했던 노마 진 베이커라는 젊은 날의 초상” 이 두 개의 분열된 자아 상태에서 정신적 미망의 상태가 지속된 데다 늘 섹스심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눈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수면제 등 약물 없이는 자신의 피폐해진 영혼을 구제할 수 없었기에 결국 약물 과다 복용으로 짧은 생을 살다간 비운의 주인공이요 시대의 희생물이었다. 라고......

 



1962. 8. 5. 먼로는 갑자기 죽었다.


이혼한 뒤에도 줄곧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해 온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계획을 발표한 뒤 1962. 7. 31. 예식을 위해 마지막 옷 가봉을 했고, 1962. 8. 8.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바르비투르산염(일종의 신경안정제) 과용이었지만 그 죽음에는 그와 관계했던 프랭크 시나트라, 이브 몽땅도 한몫했고, 결정적으로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마릴린 먼로가 사망한지 몇 십 년이 지나 제니스와 오메가를 즐겨 차던 케네디가 차지도 않고 버린 시계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그 시계는 로렉스 데이데이트 시계로 케네디와 염문설의 주인공이었던 마릴린이 1962년 케네디의 생일에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마릴린은 케네디의 생일 10일 전에 1962년 5월 19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잭, 한결같은 사랑을 담아 1962년 5월 29일, 마릴린’이라는 글을 새긴 로렉스 금시계를 케네디의 측근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둘기 두 마리가 키스하는 문양이 새긴 황금 케이스에 담겨있던 이 시계를 케네디는 버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우리는 마릴린 먼로라는 배우를 잘 알고 있다고들 한다.


우리들은 그녀의 일에 대하여 속속들이 모르는 바가 없다고들 말한다.
 
그녀의 몸매가 38- 25- 38이고, 그녀가 잠잘 때 입는 옷은 샤넬 업버 5, 공식적으로 3번 결혼했고, 그중 한 명은 미국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 타자 “조 디마지오”와 이혼한 후 “아서 밀러”와 결혼했으나 또 이혼했다고.....


그러나 먼로를 모르는 남자는 거의 없으나 진짜 먼로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분명한 것은 먼로와 하룻밤 황홀한 정사의 꿈을 꿈꿔보지 않은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면 마릴린 먼로의 정체성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


“순결한 요정과 세상을 유혹한 팜므파탈 사이에 걸쳐져 있다”고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릴린 먼로는 헐리우드의 스타 시스템과 영화자본이 합작으로 제조해낸 20세기의 상품이다. 스타시스템은 자질이 엿보이는 신인을 찾아내 합리화하고, 표준화하고, 선별하고, 결함부분을 없애고, 보석을 끼워 넣고, 조립하고, 가공하고, 다듬고, 장식해서 배우라는 상품을 제조해 낸다. (에드가 모랭)


스타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것은 소비자 즉 관객의 혼을 뒤흔들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상품으로서의 스타다. 스타의 숭배의 대상이며 동시에 관음증의 대상으로 팔려나가는 半神, 꿈의 피조물이다. 스타를 둘러싸고 있는 거품들 즉 미모와 젊음뿐만 아니라 패션, 화장, 성형술, 라이트스타일, 스캔들, 연애, 결혼, 이혼, 불륜과 부정의 소문들 등등은 이 신화를 발효시키는 효모로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팬들은 스타와 스캔들에 열광하고, 스타를 이상화하며 숭배 대상으로 삼아 예배를 마친다. 스타를 향한 숭고한 감정은 상상의 종교의례의 산물이다.


스타는 반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분신이기도 하다. 자애와 타자애가 교모하게 뒤섞이고, 이성애적 성격의 열애와 동성애적 성격의 숭배 감정이 함께 비벼져 나타나는 스타 숭배는 드문 일이 아니다. 스타 숭배의 특징들은 물신숭배적이고 정신적이며 신비적인 것으로서 귀속, 동화의 작용이며, 이것들은 동일시의 여러 양식들의 예다. (에드가 모랭)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영화산업이 제조해 낸 가장 빛나는 스타의 아이콘이다.

말 그대로 스타로서의 일생을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스타들의 화려하고 완벽하게 가공된 표면의 삶이다.

그 이면의 삶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좀처럼 공개되는 법이 없다.


 


화제를 돌려 먼로와 우리들 삶의 궤적을 한번쯤 비교 성찰해 보자


그러니까 한 가지 예로서 먼로의 운명과 바람직한 자아의 완성단계를 철학적으로 유추 해부해 보자는 것이다.


먼로는 어린 시절 편도선 합병증 때문에 일주일간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를 알아차리고 이웃집 개가 반가워서 짖어대었다. 그러나 이웃집 남자가 시끄럽다고 괭이를 들고 와 개의 등을 내리쳐 두 동강을 내어 버렸다. 그 사건은 마릴린 먼로가 이 세상에서 본 최초의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으며 먼로의 앞길을 예고하는 불행의 상징이 되었다.

그 이후 행복은 그녀가 소유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고 여기에서 사는 것의 고통과 삶의 메마름을 보아버린 자의 환멸 속에서 헐떡거리며 헤매던 그녀의 정신은 삶에 내장된 그 지독한 통속과 더러움에 심한 멀미를 느끼면서 살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마릴린 먼로의 일거수일투족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우리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을까?


욕망의 객체는 사물화 된 여성, 그러나 그녀 역시 한 명의 인간이라는 딜레마 “그 딜레마 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가야 할 것인가, 결국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여기에 니체의 순수한 영혼의 울림을 대입해 보자.

그는 일찍이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했다 ! 


“세상을 창조적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의 수수께끼에 부딪친다.


입 속으로 들어오는 뱀 대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참고 견디기만 하는 자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영원히 변신한 자, 빛으로 감싸는 자가 될 수 없다.


뱀 대가리를 물어뜯을 줄 아는 자 만이 “변신한 자”, “환하게 창조적인 번개의 웃음을 웃는 자”가 될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몹쓸 병에 지쳐 있는 병자와 같았으며 고약한 꿈에 놀라 깊은 잠에서 깨어난 병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삶이라는 질병을 끝내 떨치고 일어섰고 온갖 의무와 명령의 그물 속에 포박되어 있는 삶을 자유로 견인해내며 부정과 원한을 통해 “대긍정”, 즉 “창조와 생성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새로운 환희의 세계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오버랩 되는 또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서 주인공 미조구치는 말더듬이었고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빠져있었지만 결국 절대적 경배의 대상이요 동시에 절망의 대상이었던 완전한 존재 금각사에 불을 지름으로서 그토록 괴롭혔던 내면의 벽을 깨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그리고 죽으려고 준비했던 단도와 수면제를 버리고 내부의 살아야 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다. 그 후 주인공은 망상과 망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거부했던 세계속으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희망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먼로는 나약했다.


입 속으로 들어오는 불행의 상징 뱀 대가리를 물어뜯고 금각사에 불을 지르지는 못했다.


그 한계에 절망하면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허무, 무의미와 절망과 싸워야 했고 급기야 약물에 의존했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어갔던 것이 아닐까 ? 

 

이런 점에서 동시대에 같이 살았던 오드리 햅번(1929. 5. 4.-1993. 1. 20.)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로마의 휴일”, “전쟁과 평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은 절대 타락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연약한 성인(聖人)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말년에 배우의 삶에서 완전 은퇴하여 유니세프의 어린이를 위한 대사가 되었을 때 얼마나 확고한 몰두와 헌신으로 그 일을 해내었던지 완고하고 무감각한 정치인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국제적 외교사절이라는 직업은 그녀의 인생과 연기 경력의 논리적인 완결이었다.

“오드리 햅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오지에서 였다”는 칭송을 들으면서도 항상 겸손했던 헵번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외양은 쉽게 따라할 수 있어요. 여자들이라면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사서 쓰고 작은 민소매 드레스만 입으면 오드리 헵번처럼 보일 수 있답니다."   

오드리 햅번 역시 마릴린 먼로와 같이 동시대 헐리우드 배우로서 같은 환경속에서 살았던 것이고 두 번 결혼해서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으며 결국 대장암에 걸려 고통스런 삶을 마감한 사람이었다. 오드리 햅번이라고 왜 고뇌와 고통이 없었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비난과 절망을 안으로 용해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용서했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고통 받는 인간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다가 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누구의 삶이 더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다만 먼로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아쉬움과 연민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분명 있다. 라즈니쉬는 "죽음은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죽음에서 전체로서의 삶은 응축된다"고 했던가 !  그렇다 생전에 괴로왔을 먼로는 절정의 순간에 죽음을 받아들였고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아 먼로여 !


고통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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