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공과 심슨부인의 사랑
이름     이영주 날짜     2014-10-06 15:18:12 조회     10748

에드워드 8세는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가 되는 사람으로써, 한때 영국의 왕이기도 했었다.

1894년 6월 23일에 태어났으며, 젊어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친분을 쌓아서 인망이 높았다.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1월 20일, 독신으로 영국의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미국 출신의 이혼녀 심슨부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터였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심슨부인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국가의 사정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당시 영국의 국법으로써 그 둘은 결혼해서는 안되는 사람들 이었다. 국법상 왕은 이혼녀와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8세는 내각과 왕실,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시 그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동지라곤 윈스턴 처칠뿐이였다. 전 세계는 그 둘의 사랑을 대서특필하며 다뤘지만, 반대로 영국 내에서는 내각과 왕실의 저지로 인해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나로 하여금 왕위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 점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내가 왕세자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왕으로써 25년간 봉사하려고 노력한 우리나라 대영제국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뒷받침이 없이 왕으로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깨달았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내린 결정은 오직 내가 혼자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주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이행해 나가기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고 깨달았으며...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위의 이임사를 하고난 후 그해 12월 11일, 왕위를 내어놓게 되었다. 동생인 앨버트가 조지 6세 라는 이름으로 왕위를 물려 받았다. 연설을 마치고 나서 그는 호주의 친구 집에서 심슨부인의 이혼절차가 완료되기를 기다린 후, 1937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식장에는 영국 내각 한사람도, 영국 왕실의 한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드워드 8세라는 이름 대신 윈저공이 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지 훗날 그들이 어찌되었던 간에 그들의 사랑은 세기의 로맨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차지하기 위해 하찮은 이득을 포기했소, 앞으로 남자들은, ‘나도 널 위해서라면 왕위라도 버릴수 있다’며 신부감을 설득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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